과학이야기

Seattle, AAS 미팅이 끝나고

별아저씨의집 2011. 1. 14. 11:27

씨애틀에서 며칠 간의 미팅이 끝났다. 영 시차적응이 안된 미팅이었고 구두발표를 하지 않아 부담없이 편했던 오래만의 미팅이었다. 이번 미팅에 대한 감상 몇가지 적어본다. 

십여년 간 미국천문학회를 다녔지만, 미팅이 열리는 컨벤션센터 근처의 호텔에 묵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침 한국에 들어간 지인의 집을 사용할수 있게되어 도시 외곽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선 정말 너그럽게 집과 차를 제공해준 그분들의 배려와 열린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공무원출장 규정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예전처럼 가까운 호텔에 묵었을 것이다. 미팅을 앞둔 지난 11월에 대학본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해외출장 시, 공무원여비 규정을 꼭 지켜야 한다고. 그동안 서울대는 자체 여비규정을 적용해서 출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사에서 지적되어, 앞으로는 철저히 공무원여비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공무원여비규정이 합리적이라면 그것을 따르는게 뭐가 문제이겠냐만, 문제는 누가 만든 규정인지 우습기 짝이 없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해외출장이 많은 공무원들이 이미 계속해서 불만을 제기해 온 사항이라고도 들었다. 코앞에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는지라 공문을 받고나서 여비규정이 어떤지 뚜껑을 열어보았다. 이런... 여비가 터무니 없이 적게 책정되어있다. 미국천문학회에서 컨벤션 센터 근처 호텔을 단체로 계약해서 미팅 참가자들에게 제공하는 할인된 가격으로도 터무니 없는 여비다. 출장결정이 늦어서, 학회에서 제공하는 남아있는 호텔을 살펴보니 숙박비가 155불이다. 물론 여기에 10-15%세금이 추가된다. 반면, 공무원 규정에 보니 숙박비가 100불이 안된다. 어쩌란 말인가. 뉴욕이나 LA는 1등급 지역이라 더 높게 책정되어 있고 나머지 도시는 훨씬 적게 측정되어 있는 것도 우습다. 사실 왠만한 호텔의 숙박비는 대도시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맨하탄은 조금 예외이지만. 도 재미있는 건, 직급에 따라 여비가 다르다는 것이다. 조교수건 부교수건 대학에서의 연구나 교육활동에 전혀 차이가 없는데 공무원 규정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직급이 낮으면 더 후진 호텔에 묵으라는 애기인거지. 완전히 권위주의적 수직구조적 발상이 아닐수 없다.  나는 예일에서 대학원생일때도 사실 한번도 방을 같이 써본 일이 없고 정교수인 지도교수와 같은 종류의 방에 묵었다. 안그래도 모자라는 여비를 직급에 따라 더 적게주는 규정, 말도 안되는 규정이다. 

어쨌거나 여비가 모자라는 판에 지인의 집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아침, 저녁 출퇴근을 해야했고 주차비도 하루에 20불 가량이 들며,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훨씬 적게 되었다.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 오가는 길에 사람들과 부딪히고 만나고 밥도 같이 먹고 새로운 사람들도 사귀고 밤에는  바에서 과학의 미래와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도 하고 로비에서 일도 하고 그러다가 잠 안오는 사람들끼리 토론도 하고 그런 활동이 중요한데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다보니 그런 활동들이 심히 제약이 되었다. 사실 미팅에 오는 이유는 사람들의 발표를 듣는 일도 중요하지만 편하게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과학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통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고 그러다가 공동연구도 하게 되고 그런거다. 발표만 들을거면 그냥 연구실에 앉아 논문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생각해보면 이번 미팅은 좀 어려웠다. 다음부터는 꼭 미팅 장소 근처 호텔에 묵어야겠다. 여비가 모자라 연구활동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너무 징그럽다. 그것은 과학을 하는 자존심을 긁어 내리는 일이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젊은 연구자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는 것이다. 이번 미팅은 학생/포스닥 시절을 벗어나 확연하게 '교수'같은 느낌으로 미팅에 참여했다. 그러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복장이나 얼굴의 주름이 세월을 말해주나 보다. 물론 첫날 아침을 함께한 캐나다에서 온 71살의 천문학자는 내가 25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내 나이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자기 나이 아래로는 나이구별이 잘 안되는 전형적인 오류일테고,  대학생/대학원생들이 보기에는 나는 분명 아저씨인게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약간 제약을 받는것 같기도 하다. 학생 때에는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쉽게 '하이' 하면서 서로 소개도 하고 친해지기도 하는데 사회적 지위가 바뀌다 보니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캐쥬얼하게 학생들을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면 좀 그렇잖아. 물론 그래도 그런일은 계속 일어나기는 한다. 사실, 지금 내가 공동연구를 하는 많은 사람들도 많은 경우, 학회같은데서 처음만나 사귀고 같은 관심사가 있어 함께 연구하게 된 사람들이다. 나의 주요한 공동연구자의 한 사람인 얼바인의 Barth 교수도 내가 처음 참석한 미국 천문학회에서 내 포스터 앞에서 처음 만났고 그 이후로 계속 알고지내면서 쉽게 공동연구를 하게 된 사람이다. 물론 점점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밥을 먹으러 가게 되는 일은 점점 적어지기는 하다. 일 얘기를 하기 위해 약속을 해서 따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그래도 젊은 학생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재밌다. 귀엽잖아. 

학생때는 유명한 천문학자들에게 가서 인사도 하고 질문도 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이번 학회에서는 젊은 친구들에게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몇년 전 만났던 버클리의 학생을 다시 만났는데 그때 토론 내용을 고마와하며 자기 논문에 나에게 감사한다는 글을 넣었다고 한다.  논문을 찾아보니 정말 넣었더군. 뭐, 감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결국 이 젊은 세대들이 시간이 지나면 주역들이 될 것이 아닌가? 그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하나는 나의 이름표다. 미국 학교들에 소속되어 있을테는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말을 틀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 학교의 이름을 달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첫 말을 트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한국 학생을 빼고 미국에 유학온 외국인 학생들의 경우가 더 그렇다. 그 친구들은 내가 학생때는 사귀기가 상대적으로 쉬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내 연구결과를 아는 학생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읽은 논문의 그 Woo가 나인지를 알기가 어렵고 외국 학교에 관심도 별로 없을테니까. 

어쨌거나 미팅이 끝났고 나는 뇌가 가득 찼다. 안그래도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학생이 반 타스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없다. 흠... 씨뿌리고 땀 흘리고 그리고 나서 추수할 일군이 필요하다는 것이 물론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자, 이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