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밀라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별아저씨의집 2009. 11. 2. 16:00

밀라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밀라노 한복판

최근 대리석을 청소했다는 듀오모 성당이 기세등등하게 서있다.

마끼아또를 씹으며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들의 면면을 음미하는 인파 속에 묻혀

뜨거운 햇살을 피해 들이키는 시원한 라거 한잔이 갈증을 달랜다.


거대한 성당 전체를 빽빽이 덮고 있는 수많은 인물상, 

멋드러진 스토리를 담고 있을 그들 하나하나가 왠지 징그럽게 낯설다. 

살아움직이는 듯 볼륨감있는 그들 하나하나의 육체와는 판이하게,  

그들은 그저 광장을 메우는 인파처럼 의미없는 돌조각일뿐. 

 

패션의 도시답게 흠잡을데 없는 옷차림의 남녀들이 유유히 광장을 걷는다.

시골스런 미국인들과는 달리, 타인을 보는 눈빛과 태도에서 

이탈리언들은 도회적 이미지를 풍긴다. 


광장은 수많은 여행객들로도 붐빈다.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비롯해서

가늠키 어려운 각국의 언어들이 귓가를 스친다.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배낭족 차림에서 효도여행차림, 단체여행 차림까지 

다양한 모양새로 광장을 메운다. 

시간이 흘러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그들, 그들에겐 나도 그저 여행객의 하나일뿐.

너, 그리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최고급 이탈리언 브랜드의 상점들 사이를 인파를 뚫고 걸어본다. 

세계 어딜가나 만나는 빈국에서 온 아프리카인들이 영어로 말을 걸어오며 물건을 내민다. 

수천불하는 명품 악세사리 가게 앞에서 2유로짜리 물건들을 파는 이방인 같은

그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거시윈의 썸머타임이 섹소폰을 타고 밀라노 광장에 울려퍼진다.

꽤나 재즈를 했을법한 노년의 연주자가 길거리 주저앉아 

흐드러지게 섹소폰을 불어대고 있다. 

명연주자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푯말에 걸어놓은 옛사진엔 또 다른 그가 두 딸과 함께 담겨있고

그옆엔 어김없이 돈 바구니가 놓여있다. 

그의 인생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타오르는 갈증, 낯설게 휘황찬란한 듀오모의 대리석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과 티셔츠 차림의 여행객들의 묘한 뒤섞임 속에 

밀라노 한복판에는 썸머타임의 멜로디가 끝없이 흐른다. 


밀라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200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