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 452

죄란

왠지 모르게 신부는 뜰에서 불을 쬐고 있던 하인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예루살렘의 밤, 한 사나이의 운명에 아무 관심도 없이 불에 손만 쬐고 있던 몇 사람의 모습. 그들처럼 이 파수꾼들도, 인간이란 이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그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지껄이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도둑질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그런 것이 죄가 아니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파사데나에도 봄이 온다

파사데나에 온지 벌서 한달 가까이 되어갑니다. 시간 참 빨리 흘러갑니다. 사는데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자리잡는데 한달 가까이 걸리나 봅니다. 떠나기 전 한달은 또 마련한 물건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이 가젰지요. 차를 구입한 이후부터는 LA에 사는 동안 다녔던 한길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교회안에서만 거룩하지 말고 세상에서, 삶의 자리에서 거룩하게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어떻게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고 섬기고..... 그러나 그런 메세지들은 그리 필요한 설교들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교회안이 아니라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메세지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지 않..

하나하나 정착하기

한국에 비하면 추운 날씨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 기준으로 춥던 날씨가 좀 풀렸습니다. 보름쯤 되니 이제 조금씩 자리가 잡혀 갑니다. 큰 불편없게 필수 살림살이들도 마련하고 이제 차만 잘 해결하면 연구년 생활이 본격 궤도에 올라갈 듯 합니다. 촉박했던 논문하나를 제출하고 또 촉박했던 논문수정본도 제출하고 나니 여유는 좀 생겼습니다. 3월부터 밀려올 프로포잘 마감일들이 있지만 이제 어떻게 하면 가장 유익하게 연구년을 보낼수 있을지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방향의 공부를 해 볼지 그런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카네기 천문대는 자주 방문했었지만 모두 아주 짧은 방문들이었기에 이번에 길게 머무르면서 속속들이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매주 있는 콜로퀴움은 흥미진진하고 금요일 점심에 하는 ..

파사디나에서

시차 적응이 좀 되었습니다 안식년, 아니 연구년을 보내러 파사데나에 왔습니다. 이민가방을 여럿 들고 들어왔지만 빈집에 들어오니 유학시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라이드 도움을 받아 첫날에 식탁 등등을 마련했고 며칠 지나 매트리스도 장만했습니다. 며칠 추웠는데 침대에서 자고 식탁에서 밥먹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차가 없으니 갑갑하지만 그래도 하나씩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타국에 배달된 느낌으로, 모두 잠든 아파트의 정원을 내려다 봅니다. 아무 의지할데 없는 사람들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는 급하면 전화하고 부탁할 사람들이 있지요. 미안해서 그렇지 기댈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앞이 막막할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사..

미국 천문학회

켈리포니아 롱비치, 미국천문학회에 왔습니다. 4년만에 똑같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한 걸 보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는 나이가 드는 거라고 합니다. 화요일 아침에 일찍 구두발표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학회에 임하고 있습니다. 공동연구를 하는 동료들과 여러 토론 미팅을 하고 혹시 박사후연구원이 될지도 모르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인터뷰 비슷하게 토론도 했습니다. 다른 학회때 만났던 사람들과 그동안 연구내용을 요약정리해 듣기고 하고 새로운 공동연구 아이디어들을 내고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언제와도 학회는 항상 생산적입니다.

대선후보 TV 토론을 보고

대선후보 3차 TV 토론을 지켜봤습니다. 문재인후보, 듣는 자세, 지적하는 자세 멋졌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구체적인 정책에 관한 질문에도 원론적인 좋은 말로만 답변을 다는 경우가 많더군요. 인품, 소통능력, 지식, 논리적 사고 등등. 인물만 본다면 누가 대통령감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낸 토론이었습니다. 선거연설이나 기사, 글 등으로는 두 후보의 됨됨이를 제대로 알기어려운데 생방송 토론과정을 지켜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메디처럼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도 꽤 있었고 토론 후 곰곰히 생각해 보니 걱정도 많이 됩니다.

올 겨울은 너무 춥습니다.

그래요. 춥습니다. 보통 12월까지는 별로 추위를 못 느끼고 1월이 되어서야 춥다 싶은데 올해는 11월부터 춥군요. 미 동부에서 살던 시절처럼 어둠은 빠르게 다가오고 날은 춥습니다. 작년도 비슷했는데 내 몸이 더 추위를 많이 타는 건지 아니면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약발이 다 끝나고 해마다 겪는 겨울의 힘에 서서히 굴복되는 건지... 움츠러드는 몸 살갗에 드는 한기는 외로움의 표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훈화처럼 잔소리 바른소리만 하는 것이 마치 직업병 같습니다. 선생이란 직업에 대한 울렁증이 드디어 발효된 걸까. 자유롭고 싶은 영혼, 파일럿이 되어서 아프리카 초원을 저고도로 비행하고 파리에서 1년 즈음 프렌치와 역사를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 배낭메고 전국일주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모든 글 빚..

대선 단일화 토론을 보고

어제 밤늦게까지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토론을 지켜봤습니다. 문재인 후보, 멋있어 보이더군요. 토론하는 모습과 내용을 지켜보면서 리더십과 소통의 능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정치 경험에서 나오는 현실적 감각이 보였습니다. 결국 정치는 다른 의견들을 조율하면서 선택을 해야하는 과정일텐데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잘 드러내더군요. 반면, 안철수 후보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정치개혁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도자 보다는 전략가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 같습니다. 또한 정치개혁으로 내세운 내용들도 사실, 원칙에 가까운 이론적 접근이고 현실 혹은 실천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고집스러운 면도 보이더군요. 단일화가 걱정됩니다. 단일화에 임하는 자세에 관해서는 안철수 후보 ..

우리말 글쓰기

아침에 이대 출판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말 글쓰기에 관련된 교양 교재를 만드는데 제가 매경에 쓴 칼럼을 인용하고 싶답니다. 좋은 예인지, 나쁜 예인지 물어봤더니 좋은 예라는 군요. 우리말 글쓰기에 관련된 교재에 내가 쓴 글이 예문으로 들어간다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글쓰기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제가 봐도 잘썼다 싶은 글이 있고 좀 부족하다 싶은 글도 있는데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시간과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됩니다. 칼럼도 그렇고 추천사도 그렇고 요즈음에는 짧은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피땀을 짜서 만든 글, 어쪄면 글은 영원히 남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해야되겠죠.

입병

독일 출장 가기 직전에 입병이 나더니 새로운 자리에 입병이 다시 나고 있습니다. 출장 후 지난 한 주도 한일 공동 워크샵이 이틀간 있었고 많은 미팅들이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청소년 센터 강의에 이번주에는 과학고 특강시리즈도 겹쳤네요. 두말 만 버티면 안식년을 갈테니 여유있는 생활을 그리면서 좀더 참아야 겠습니다. ^^ 그래도 입병이 나면 사람들 대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비타민과 과일을 잔뜩 먹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