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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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다. 오래된 CD케이스를 열어 비발디의 봄의 악장을 듣는다. 창 밖, 결혼식장을 향하는 사람들의 총총대는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쏟아지는 봄비 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바이올린의 선율이 가날프고 섬세하게 마음을 휘젓는다. 봄은 언제나 그렇듯 잃어버린 땅을 떠올리게 하고 봄이 없던 시간을 한숨에 망각시키듯 단절된 10년의 삶을 넘어 봄의 추억으로 데려간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길디 긴 장문으로 아줌마의 수다처럼 먼 이국의 삶들을 그리고 있으나 인생이 드러내는 삶과 사랑과 사람들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오늘 여기 일상에 오버랩된다. 나는 비를 맞고 추위에 떠는 새싹처럼 따듯한 햇살을 쬐려 기다리는 노인처럼 사계절을 끌고가는 시간에 밀려다니다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는 사내처럼 오늘 여기서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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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에 아침이 깃듭니다. 짙어지는 여명을 배경으로 까치들이 활기찬 아침인사를 하고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들은 가을의 문턱에 섰습니다. 관악산을 마주하고 계절을 생각합니다. 한가한 도로 위를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이 붉은 신호등에 멈춰섭니다. 머리속을 가득 메운 온갖 두뇌작업들을 내려놓고 나도 잠시 멈춰 섭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 길의 동행입니까? 아님, 이미 오래전 어느 갈림길에서 당신의 길을 벗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대는 이 넓은 도로를 쓸쓸하게 질주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언제나 그렇듯 당신은 말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화엔 말이 필요없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한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당신의 얼굴을 비추고 오늘도 나는 그의 나라를 숨쉬고 있..

1월 초 워싱턴 DC방문

1월 초에 5일에서 9일까지 DC에서 미국천문학회가 있습니다. 어차피 서부에 있으니 참석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9일 오후 늦게 일정이 끝나면 10일 비행기로 LA에 돌아올까 해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혹시 동부에서 만날 사람들이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학회 다음에는 주말이라 시간은 있는데 동부에 가는 발걸음을 뭔가 유용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갑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멀티태스킹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돌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 프로젝트들의 상황, 다음 단계 연구 내용, 연구비 관련 자잘한 일들, 학생 지도와 관련된 일, 참석할 컨퍼런스, 발표 준비, 그리고 마감이 다가오는 글쓰기, 집필 계획... 아침 시간, 샤워를 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다 보면, 머리를 감았는지, 세안을 했는지, 샤워젤을 사용했는지, 샤워의 3단계 중 어디까지 했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멀티 태스킹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렵사회 시절부터 있었고 멀티 태스킹을 하는 것은 원시사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얘기를 썼습니다. 사냥한 동물을 먹으며, 더 힘쎈 놈이 다가오지 않나 경계해야 하고, 새끼들도 돌봐야 하고 동시에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할 수 밖에 없던 시절..

페이스북,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가다

그동안 거부하던 페이스북의 세계가 갑자기 들어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굴러가던 한국의 삶의 자리를 떠나 미국에 연구년으로 나온 지난 반 년 동안, 아마도 조금씩 사람이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페북을 시작한지 며칠 안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쏟아지는 사람들의 정보의 홍수에 약간의 현기증이 난다. 초짜로서 몇가지 인상을 정리해 본다면, 1. 소위 '페친'을 맺음으로써 새로운 사람들, 그것도 잘 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의 우주는 그렇게 넓어진다. 2.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이십 년 씩 세월의 계곡을 넘어서 잊혀져 있던 옛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갑자기 마주하는 일은,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흐른 새로워진 모습들을 발견하는 흥분과 더불어, 좋든 ..

연구년의 반을 보내고

연구년으로 미국에 나온지 벌써 반년이 되어간다. 1년의 반이 후다닥 지나간 셈이다. 첫 3개월은 밀린 연구들 마무리하고 논문들을 내는데 주력했고 그후 3개월은 새로운 연구들을 셋업하면서 미국에 함께 나온 두 학생과 한국에 남아있는 박사후 연구원, 학생들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학부생 인턴이 들어와서 훈련 중이고 간단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쉬었던 그룹미팅을 얼마 전 다시 시작했는데 예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내가 조금 여유를 찾아서일까 혹은 여학생이 들어와서일까 아니면 학생들이 성숙해져서일까. 답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요즘은 학생들과 일하는 것이 많이 편해지고 재미있어졌다. 교수로서는 아무래도 다행이라고 말해야겠다. 학생들과 일하는 것이 재미없고 힘들다면 직..

설교란, 강의란,

설교는 양식이 아니다. 설교는 1주일에 한번씩 영적 배고픔을 채워주는 양식이 아니다. 설교는 배고픔을 느끼게 해주고 갈증을 일깨워 주어 영적 양식을 찾아가게 하는 도전과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내용의 주일설교를 들으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강의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대중강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지식에 대한 탐구와 열망을 자극하고 일깨워주는 도전과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중강의가 단지 지식을 전하고 한번 사람들을 지적으로 놀라게 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지식을 갈망하게 하는 갈증을 느끼게 해야한다. 뭐, 그런 생각.

대중강연의 맛

그동안 학부/대학원 수업 이외에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대중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한달에 한두번은 블랙홀이나 우주이야기, 혹은 과학과 신앙에 관한 강연을 한 듯 합니다. 안식년이 되서 LA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 거의 대중강연을 거의 안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여기서는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일차적 이유인데요. 지난 5월에 스탠포드대학의 모임에서 강연한 것과 지난 주에 코스타 컨퍼런스에서 강연한 것이 고작입니다. 물론 아직도 한국에서는 가끔씩 강연요청 이메일이 옵니다. 미국에 체류중이라고 거절 답변을 보내곤 하지요. 처음에는 강연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무척 편하고 부담도 없고 그랬는데 이제 한 반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니 왠지 대중강연 생각이 조금씩 떠오릅니다. 학자에게 소통이란 글과 강..

2013 코스타

7월4일 휴일을 앞뒤로 코스타에 다녀왔습니다. 2000년에 처음 참석한 코스타, 그동안 많은 인연이 있었고 또 많은 인연을 만들어내는 코스타입니다. '과학과 신앙'관련 세미나 강의를 했습니다. 교수 연차가 올라가서 그런지, 누가 말한것처럼 교수 포스가 나서 그런지, 예전만큼 코스탄들과 가깝게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코스탄들을 만나고 얘기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세미나강사로 온 우지미교수와 참석자 중에 교수일을 시작한 분들, 포스닥 분들과 한 얘기들이 오히려 나의 교수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의 need가 있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좋은 기회인것 같습니다. 이번 주제는 Set free 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