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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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저씨의집 2018. 10. 23. 09:50

18.10.19


오랜만에 집에서 쉬는 저녁시간입니다. 오늘도 연구모임이 있었는데 몸이 피곤하여 안되겠다 싶어 불참을 알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랜만이라며 반가와하는 아내가 미소를 보냅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시험과 보고서로 바쁜 그녀도, 외부 일정으로 바쁜 나도, 1주만에 집에서 식사하며 얼굴보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꿈에서 시험을 보며 이상심리 분석을 했다는 그녀는 오늘 새벽 출근하는데 제가 영어로 마구 잠꼬대를 했다고 합니다. 종종 꿈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왜 한국말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꿈인데 말이죠.


집에 왔더니 부엌 프라이팬에 그대로 계란후라이가 있었다면서 뭐냐고 묻습니다. 앗, 아침에 제가 커피내리고 빵과 사과 꺼내고 계란 하나를 프라이팬에 풀었는데 뒤집어서 잘 구어놓고 깜빡 먹지를 않았군요. ^^ 가스관을 잠궜는지 2번이나 확인했는데 막상 계란을 안 먹었다니, 거참. 왠지 힘이 덜 나더라~


학기 중에는 지방 일정을 잘 잡지 않는데 어제 순천 일정은 왠지 끌려서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저녁엔 생태영성 신학자 분을 만났습니다. 최광선 목사님입니다. 페친 혹은 팔로워 중에 한분이라 생각하고 만났는데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호남신대에서 5년반을 가르치시고 순천에서 목회를 막 시작했다는 그분은 토론토 대학에서 토마스 베리가 우주론을 생태학과 영성에 접목한 내용을 동아시아 우주론까지 확장시켜 연구하신 학자였습니다. 귀한 저녁대접 보다 나눠주신 생태학의 내용들이 훨씬 값진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순천에도 페친들이 여럿 계셨고, [과도기]를 감명깊게 읽으신 분이 순천도서관에 저를 강연자로 추천하셨다 합니다. 교회에도 초청하고 싶다는 바램을 알려주셨습니다. 네, 인구에 비해 교회/교인이 많다는 순천, 거기서 교인들에게 좋은 강의내용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감사하겠네요.


천안에서 부터 내려오신 어느 목사님/교수님은 순천역까지 배웅을 주셨고 역에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백석대 교목으로 일하시면서 만난 청년들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돈에 쩔어 미래가 없는 아이들, 죽음을 넘나드는 아이들, 다양한 소외를 겪는 아이들.. 그들과 놀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꼰대같은 답정너의 모습보다 낫겠습니다.


지구나이가 6천년이건 46억년이건 뭐하겠습니까. 소고기 사묵겠습니까. 과학과 신앙의 건강한 시각은 왜 필요하겠습니까? 다 사랑하자고 섬기자고 돕자고 함께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종종 삶의 정황을 놓치고 현장에 민감하지 않으면 정치적 탁상공론이나 하게 될 뿐입니다. [인간, 위대한 미스테리]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표현하듯 발코니에서 내려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관점이 아니라, 길거리로 내려와서 함께 걸으며 같이 겪고 느껴야 합니다.


이 날의 피날레는 귀한 섬김으로 장식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용산역 늦은 시간에 택시잡기가 어려운데 택시파업으로 귀가길이 어려워졌습니다. 기차에서 살짝 졸다가 들은 방송에 택시파업에 대비하라는 메세지가 나와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잠이 들었는지 받지를 않습니다. 새벽 출근이라 일찍 잠에 들었네요.


걱정되서 몇마디 페북에 올렸는데 포스팅을 본 페친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근처에 산다면서 라이드를 주시겠다는. 이렇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에 귀가했습니다. 제 강연을 통해 그리고 과신대 행사에서 만난 분이더군요. 새벽기도회를 가셔야 하는데도, 늦은 시간에 잠이 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면서 흔쾌히 도움을 주신 겁니다.


긴 하루, 은혜가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주어졌고 그것으로 우리는 자율성을 가지고 삶을 결정하고 살아갑니다. 자연세계는 자율성을 부여받았고 우발성을 통해 다양성을 창조해 내며 흘러갑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만들어내는 우발성과 자연세계의 우발성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사랑을 만들어내고 구현시키는 놀라운 기작입니다.


우리 삶은 꽉 짜여진 설계도를 따라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발성이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발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맛봅니다.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현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