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과도기 이야기] 38. 진화론이 근거를 잃었다고?

별아저씨의집 2018. 6. 6. 13:58
"근거 잃는 진화론… 美·스위스 과학자, 진화론 뒤집는 연구결과 발표"

이런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국민일보에 실렸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생명과학의 근간을 흔드는, 진화론을 뒤집는 새로운 연구결과에 관한 기사가 왜 과학면에 실리지 않고 종교면에 실렸을까요? 짐작이 되시죠?

이 기사에 인용된 논문에 관해서 며칠전 듣보잡 어느 매체에서 기사를 냈습니다. 진화론이 뒤집혔다는, 도대체 그동안 학교에서 뭘 배운거야라는 선정적인, 정확히 말하면 낚시성 제목이 달리면서 기독교인들이 그 기사를 카톡과 페북으로 엄청 퍼나르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누가 쓴 건지 기자 이름도 달리지 않는 카더라 수준의 기사였습니다.

링크된 논문을 훑어보니, 기자가 소설을 썼더군요. 논문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출중한(?) 글솜씨를 보면서 확신 했습니다. 이거 논문도 안 읽고 쓴 기사구만.

생명과학자도 아닌데, 저에게 이 기사를 읽어보라고, 확인해 달라고, 이거 뭐냐고, 묻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생명과학이라는 거대한 학문 분야의 토대가 되는 진화과학이 뭐 논문 하나로 근거를 잃고 무너지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논문 저자는 노벨상은 꿰차겠지요? 더군다나, 네이쳐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들, 대중매체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새로운 결과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반복 확증되지 않거나 틀린 결과로 판명되는 경우도 수두룩 한데, 정식 논문도 아닌거 같고 리뷰 수준의 논문 하나로 진화론이 근거를 잃는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래도 복수의 분들이 자꾸 질문을 하고, 페북 과신대 그룹에도 관련 포스팅이 올라와서 링크된 논문을 살펴봤습니다. 도대체 이 논문 어디에 진화론의 근거를 잃게 하는 내용이 있다는 건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이미 생명과학자들이 이 기사는 논문의 내용과 다르게 소설쓴 거라는 판단을 여기저기서 내려주었습니다.

하루쯤 지난거 같은데 국민일보에도 기사가 실렸군요.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이거 쓴 기자가 논문 제대로 안 읽어 보았거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한게 말이죠. (심지어 논문이 실린 저널 이름의 오타도 다른기사에서 그대로 따왔다는 후문입니다).

진화론이 근거를 잃었다고 제시하는 내용이 뭐 이런 겁니다.
“10만-20만년 전에 현존 생물종 90% 같은 시기 나타났다” “서로 다른 두 종 사이에 중간 종이 없다”

이런 기사가 과학면이 아니라 종교면에 실리는 것도 당연하죠. 과학기자들도 과학기사 제대로 이해못하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종교면에 쓰는 기자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유비를 한번 해볼까요? 사실 2018년 한반도에 현존하는 인간들은 90% 이상이 1920년대 이후에 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인간이 살기시작한 것은 1920년대 이후가 분명합니다. 믿으십니까? 한반도에 사는 인간들은 정자와 난자가 만난 단세포에서부터 세포분열을 통해 열달의 기간을 거쳐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주장은 반박되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한반도의 인간들은 모두 즉각적으로 순식간에 기적적으로 창조된 것이 분명합니다. 네, 물론 말도 안되는 해석이죠. 연구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지맘대로 해석한 기사가 문제라는 겁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10민-20만 년 전에 현생 종들의 90%가 생겨났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젊은지구론 창조과학을 무너뜨리는 결과입니다. 지구나이가 6천년인데 어떻게 생물들이 10만-20만 년전에 출현할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창조과학의 반증이 되어 버립니다.

한발 더 들어가서, 논문의 내용을 보면 현생 종의 90%가 10-20만년 전에 출현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작다는 사실은 인간이 약 10-20만년전에 분화되었다는 것과 잘 들어맞는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종들도 90%는 비슷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표현입니다.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가지고 분석한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기사는 터무니없게 왜곡한 셈이죠.

중간 종이 없다, 매번 창조과학 신봉자들이 꼽는 주장입니다. 아니, 종들이 다 진화해서 현재 가장 진화한 단계에 왔는데 중간 종이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게 진화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중간 종을 찾는 거겠지요.

국민일보 기사가 참 허망한 수준입니다. 이거 쓴 기자는 분명 며칠전 돌던 그 카더라 기사보고 이 기사를 썼을 겁니다. 그러니까 논문 내용보다 그 엉터리 기사를 참조해서 출발했겠죠. 논문의 초록을 읽어보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멘트를 딴다는 것이 진화과학자들에게 묻지 않고 창조과학자들에게 물어서 인용했군요. 그러니 과학면이 아니라 종교면에서 실리는 것이겠죠.

창조과학 신봉자들은 자기들이 해석하고 자기들 해석을 자기들이 퍼나르면서 진화론 무너졌다고 무한반복하겠죠? 이 논문의 저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이 연구 결과로 진화가 부정되었다고 판단하는지, 혹은 진화과학이 근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지? 진화가 일어나는 메카니즘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하는 거잖아요. 진화과학에 새로운 결과가 나온 것이죠. 진화를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추가한 셈이겠습니다.

네, 여러분 이런 기사는 논문을 왜곡 인용한 불성실하고 참담한 수준의 기사입니다. 그냥 무시하세요. 기레기는 정치부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공부좀 합시다. 그게 안되면 최소한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