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

만남.

별아저씨의집 2018. 2. 27. 14:30
만남. (2018.01.13)
인생은 만남이다. 돌아본 인생은 조각난 기억들의 재구성이겠지만 오늘 나의 인생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10대에는 스승을 만났고 20대에는 연인을 만났고 30대에는 적들을 만났고 40대에는 동지를 만난다. 50대에는 제자를 만날 것 같고 60대에는 친구를 만날 듯 하고 70대에는 기억하는 자들을 만나고 80대에는 남겨진 자들을 만날 것이다.

20대 때처럼 매력적인 여인과 썸을 타고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절망스런 나이감이나, 더이상 나를 감화시키고 모범이 되줄 스승은 만날 수 없다는 꼰대감이나, 무한경쟁과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한계감은, 어쩌다 마주친 동지들과의 신비한 만남 뒤로 홀연히 사라진다.

내가 뭐 그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존중하고 존경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뭐 그리 잘났고 멋지다고 그저 좋아해주고 조건없는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걸까? 벗어날 수 없는 자뻑증세의 관점으로 볼 때 내 안에 조금은 누군가에게 매력이 될 만한 구석이 있겠다만 사실 내가 받는 사랑과 관심은 나의 나됨에 비해 과도하다.

어쩌다 과학자가 되고 어쩌다 교수가 되고 어쩌다 의미있는 일들을 하게되었다만 비트코인에 붙은 허망한 김치프리미엄처럼 나를 규정하는 나의 외면들에는 허망한 프리미엄들이 있다. 그 과대평가를 손수 걷어내고 낮아질만큼의 성인스러움은 내게 없다. 그저 그 상황에 종종 어리둥절하며 마음 한구석으로 즐기는 저급한 속성이 채워져 있을 뿐.

동지들을 만난다. 백억 년의 우주역사, 백 년의 인생사에서 과연 의미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되는 요한복음처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은 출발점이 되겠다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이 있겠다.

이 거대한 우주에 속해 있다는 것,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그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는 것이 왜소한 나를 우주만큼 확장시키듯, 나의 지루한 일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 잃어버린 땅에 올 봄처럼 이 파괴스럽고 모순적인 세상이 그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소망, 그 숨겨진 conspiracy 비밀스런 작전에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건 형용할 수 없는 흥분을 일으킨다. 비록 그 계획의 구체성이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에 있다 해도.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처럼, 나찌 치하의 본 회퍼처럼, 세상을 뒤바꿀 신의 역사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지들이다.

기득권의 나팔수가 되어버린 제사장들의 교회에서는 선지자들을 만날 수 없다. 성전이 아니라 광야로 나가는 이유는 바로 그 선지자들을 만나기 위함이 아닌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결코 계획된 적이 없다.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의 사건들을 통해 동지들을 만나는 일은 음모론같은 비밀스런 작전이 구체성으로 현현하는 순간이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수백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숭배자들을 죽인 엘리야의 고독과 지침에 대한 응답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남겨진 자들에 대한 약속이었다.

비밀스럽다. 필연이 아닌 모든 우연적 사건은 사건의 발생 후에는 그 일이 필연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할 수 있지만 우발적 사건들을 통한 동지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신비롭고 비밀스럽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동지인가? 그 동지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그들을 만나서 함께 변혁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했고 가능한가? 우리는 누구인가? 한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속화된 교회와 우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는 적들의 포효 속에서 이 비밀스럽고 알쏭달송한 일에 뛰어 들어 그의 통치를 기다리고 도래시키려는 우리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