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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없으면 경건도 없는 겁니다.

오늘 설교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설교 전 특송 시간에 들은 찬양엔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라는 가사가 담겼습니다. 내 삶이 주의 역사가 된다는 고백은 들을 때마다 부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고백입니다. 찬양 전에 나눈 짧은 나눔을 통해 맘몬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를 표하면서 한 청년이 부른 노래라 더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어진 설교는 요한복음 15장을 중심으로 전해졌습니다. 설교해 주신 조석민 교수님은 결론부분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받는 고난이 있습니까? 세상 속에서 경건한 삶은 고난을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난이 없다는 것은 거꾸로 경건이 없다는 방증이 되는 셈입니다.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고난이라는 것이 굳이 내 삶의 자리를 떠나 타문화권으로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일은 제한된 숫자의 선교사들의 일이겠습니다. 오히려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직장에서 내 지인들 사이에서 내 가정과 친구들 모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따르는 고난이 과연 있는가를 물어야 하겠습니다.

설교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다들 타협해서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주일에 교회가고 식사기도 하면서 자기를 구별하고 아침에 성경읽고 헌금과 십일조도 하고. 그 정도로 경건의 모양을 취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당할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설교 후 질문시간에 그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지금 여기 한국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드러나야할 고난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개인을 넘어 교회 공동체가 마땅히 겪어야할 고난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한두 가지 예를 부탁드렸습니다.

삶에서 드러나는 고난은 결국 돈과 관련되겠습니다.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맘몬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크게 혹은 적게 모종의 고난을 당하겠습니다. 직장에서 불법한 일을 거부하거나 다들 취하는 편법의 이익을 홀로 거부하는 일도 있겠습니다. 더 적극적으로는 내가 가진 재물을 나누어주는 방식이겠습니다. 눈꼽만큼 기부하고 생색내는 수준이 아니라, 다들 집사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부의 축적을 추구하며 노년의 편안한 삶을 위해 은퇴자금을 모으는 사회에서, 검소하게 살며 내가 가진 걸 나누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나눔으로 치뤄야할 댓가를 흔쾌히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사실, 십일조를 했다고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속으로 자부하는 것이 우리 부끄러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초등시절부터 십일조를 빼먹은 적이 거의 없지만 십분의 일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게 교회를 넘어 사회의 약자를 위해 기부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건 참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매달 기부하는 금액이 백만원이 넘지만 사실 한번도 이런 기부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수입의 반 이상을 떼어서 기부한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 고난이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전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제시한 두번째 예는 정치적인 참여와 섬김이었습니다. 불의한 일에 항의하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촛불이건 1인시위건 사회의 모순과 아픔에 참여하는 일은 소위 정치적 활동이라며 교회에서 금기시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이런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책임하게 개인경건만 추구하는 기복적 신앙인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고난이 따릅니다. 성명서에 서명을 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고 정부기관에 미운 털이 박히기도 하고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사찰을 당할 수도 있고 적게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가치대로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어가기를 소망하며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우리 삶을 예배로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칠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교회가 겪어야 할 고난은 무엇일까요? 종교인 과세가 교회가 겪는 고난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세무조사가 들어올까봐 걱정하는 인간의 욕심이 주는 고통에 불과합니다. 자기 잘못때문에 겪는 고난은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과 다릅니다.

교회는 작아지고 낮아지고 약해져야 합니다. 연간 예산 천억을 그것도 현금으로 거의 순이익으로 걷는 대형교회는 기업을 넘어 재벌 수준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멋진 예배당과 잘 갖춰진 음향시설, 각종 편의시설, 아이들을 위한 교육, 넓은 주차장,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만 드리고 사리질 수 있는 익명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화된 교회를 거부하고 불편하고 힘들어도 때로는 심지어 예배에 집중하기조차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프라와 인력이 열악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 자체가 고난일 수 있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에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한지 돌아보는 잣대는 아마도 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과연 고난을 겪고 있는지, 내 잘못 때문에 겪는 고난 말고, 복음을 위해서 성경적 가치를 추구하며 겪는 고난이 과연 있는지 묻는 일이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어간 그 분을 따르겠다는 고난의 의지가 우리에게 있기를. 주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Posted by 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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