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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옹호하다 - 테리 이글턴

별아저씨의집 2016. 1. 25. 18:55


테리 이글턴의 '신을 옹호하다'를 읽고 있습니다. 

며칠 전 1장을 밤 늦게까지 읽었고 오늘은 2장을 읽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만들어진 신'의 도킨스와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히친스를 비판하는 책입니다. 


도킨스와 히친스의 기독교 이해가 너무 피상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신학에 대한 이해가 원초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무신론자는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적이 없는 미국인만큼이나 드물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이글턴은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번역하자면, 목사의 성추행이나 대기업으로 전락한 교회, 샤머니즘과 기복신앙을 파는 타락한 종교문화, 여성에 대한 불평등 등에는 도킨스나 히친스의 비판에 함께 하지만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대변합니다. 


예수의 삶은 희생과 섬김의 삶이었고 그의 가르침은 오히려 정의와 사랑을 강조했으며 성경은 자유주의자들의 낭만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종교라고 일갈합니다. 


특히 기독교의 표면적인 문제들에만 주목하여 그것을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 양 얇팍하게 풀어내는 도킨스와 히친스가 사실은 종교보다 더 큰 해악인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침묵한다는 점을 신랄히 까발립니다.


뛰어난 과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철학적 사회학적 깊이가 없는 과학자의 무모한 공격은 얇팍한 치기 정도로 일갈을 당하는 군요. 


며칠 전에는 1장을 읽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도 아닌 듯한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 썩어빠진 많은 교회강단에서 울리는 영혼없는 설교보다 더 강한 복음의 진수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기독교의 사회적 병폐에 대해서는 도킨스나 이글턴에게 동의할 수 밖에 없지만 과연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 무엇이었던가를 되돌아보게 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맑시스트의 글은 오랜만에 읽는 셈인데 역시 글빨이 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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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단지 '증명될 수 없는 어떤 명제들을 받아들이는 일'로 축소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움직여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믿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명제들이 아니라 일련의 헌신이다. 그들이 피부색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움직여 행동에 나서려면 그에 앞서 이미 정의라는 개념과 정의의 실현 가능성에 어느 정도 헌신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정의 실현을 위한 행동을 유발하기에 충분치 않다."

-테리 이클턴의 '신을 옹호하다' 3장 믿음과 이성 중에서


그렇다. 기독교신앙이 말하는 믿음은 단지 사실인지 아닌지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일을 사실로 인지하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약속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거기엔 약속의 대상에 대한 헌신이 담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과학으로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창조주인 그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거기 헌신하는 것이다. 단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준의 인지는 믿음이 아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귀신들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믿음은 약속에 대한 헌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