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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 - 테드 피터스 & 마르티네즈 휼릿

별아저씨의집 2015. 5. 24. 21:00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 - 테드 피터스 & 마르티네즈 휼릿



과학신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GTU)의 테드 피터스 교수가 애리조나 대학의 휼릿 교수와 공저한 책이 지난 4월에 번역출판되었다.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 라는 호불호가 갈릴만한 질문이 번역서의 제목이다. 원저의 제목은 "Cand we believe in God and evolution?"로 거의 비슷하다.  


240쪽의 두께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번역도 깔끔하다. '오리진' 만큼의 깊이와 폭넓은 내용들을 담기보다는 '무크따 (무신론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정도로 대중성을 목표로 한 책이다. 14장으로 되어 있는 책의 구성을 보면, 다윈의 자연선택에 대한 내용점검에서부터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화이론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화가 하나님의 창조와 양립할 수 있는지를 차례로 다룬다. 그리고 창조과학자들이 믿는 내용은 무엇인지, 지적설계의 내용과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유신론적 진화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하나씩 풀어간다. 마지막에는 창조와 진화를 어떻게 연결해서 봐야하며 창세기 해석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논한다. 무거운 주제들일 수 있는 이 내용들을 너무 버겁지 않게 가벼운 필치로 전개하며,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스타일로 저술했다.


두 저자는 창조과학에서 유신론적 진화까지 다양한 입장들을 소개하지만 이들의 무게중심은 유신론적 진화에 있다. 과학적 창조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창조과학에 대해서는 역시 비판적이다. 


"과학적 창조론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안타깝게도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라는 진술로 요약될 수 있겠다. 또한 심지어 근본주의와 창조과학이 동일한가를 다룬 장에서는 근본주의 조차도 창조과학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근본주의도 진화와 완전히 맞서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한편 진화를 비판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차분한 고찰을 시도한다. 우선 '무크따'에서 진화와 진화이론, 그리고 진화주의를 구별하자고 제안했던 것처럼, 두 저자도 진화이론이라는 과학모델은 존중해야 하지만 사회진화론이나 무신론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좋은 과학이 종종 무신론적 진화론이나 심지어 사회진화론과 같은 비과학적 이데올로기들로 완전히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다윈의 진화이론에서 사회진화론이 나왔고 그것이 우생학과 유태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로 이어진 점을 언급하며, 유태인 학살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진화론의 책임으로 돌리는 반진화론자들의 이야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극단적 우파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진화론 같은 내용은 상품을 싸고 있는 포장지이며 진화이론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포장지와 내용물을 구별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사회적 혹은 신학적 맥락에서 진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반진화 입장의 사람들이 꼭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이들은 진화이론을 절대화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그러나 진화이론은 여전히 반박되지 않은 훌륭한 과학임을 설명한다.


지적설계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 이들의 입장은 기존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지적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지적설계가 나쁜 과학일 뿐 아니라 아예 과학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유신론적 진화를 인정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왜 잘 들리지 않을까라는 문제도 제기한다. 그들이 꼽은 세가지 이유는 이렇다. 


첫째,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과 신앙을 종합하려고 애쓰는 다양한 시도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둘째,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에게는 공적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과 기관들이 없다. (재정의 문제다)


셋째, 그들이 속한 교회공동체들이 그들의 창조적인 공헌을 가볍게 생각한다. 


흠, 이 세가지 지적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함께 얘기해 볼만한 내용들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카톨릭,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의 입장도 간단히 다룬다. 두 저자의 견해는 크리스천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 '무크따'와는 다른 방향에서 숲을 보는 입문서로서 일품이다. 하나님과 진화를 과연 동시에 믿을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