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오랜 만에 마젤란 망원경 (Magellan Telescope) 관측시간을 얻다

별아저씨의집 2013. 12. 5. 10:43

어제 아침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초가을에 제출했던 관측제안서 중 몇 개의 결과가 발표된 것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세계정상급 관측시설 중의 하나인 구경 6.5미터의  망원경 (Magellan Telescope)시간을 4일이나 배정받은 것입니다. 기쁘고 감사한 소식입니다. 


칠레 북부 라스캄파나스 천문대에 위치한 구경 6.5미터의 마젤란 망원경. 2000년대 초에 건설된 마젤란 망원경은 바데와 클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개의 망원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젤란 망원경 카네기천문대와 하버드 대학, 미시건 대학, 아리조나 대학 등등이 소유하고 있는 시설입니다. 칠레 안데스 산맥 자락에 있는 라스캄파나스 천문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구경 25미터급의 차세대 관측시설인 거대마젤란 망원경이 현재 건설되고 있는 곳이 바로 라스캄파나스 천문대입니다. 우리나라가 10%의 관측시간을 갖게 될 거대마젤란 망원경 (Giant Magellan Telescope)의 이름도 마젤란 망원경보다 큰 망원경이라는 뜻으로 붙여졌지요. 


외부에서 이 망원경 시간을 사려면 하룻밤에 5에서 6만불 가량을 지불해야 하는 시설입니다. 물론 미시간 대학 및 카네기 대학의 공동연구자들을 설득해서 얻은 시간이라  제가 돈을 지불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그룹, 특히 제 박사과정 학생 중의 한 명이 주도할 프로젝트입니다. 칠레까지 비행기표만 4백만원이 훌쩍 넘으니 학생과 함께 두번 관측을 갔다오려면 여비로만 2천만은 들겠군요. 물론 2억짜리 관측시간을 얻었으니 2천만원은 투자해야겠죠. 데이타를 얻기 위해 관측을 갈 때는 교육상 다른 학생을 데리고 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다른 학생을 데려가진 못하겠군요. 


앞으로 5-6년 뒤에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거대마젤란 망원경 시간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사실 우리나라의 관측시설이 매우 모자란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천문학 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이 간극을 메우고자 내년부터 외국의 대형망원경 시간을 구입해서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K-GMT Science Program 이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거대마젤란 시대를 앞두고 국내 연구자들의 관측 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중대형 망원경 시간을 구입하여 제공하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입니다. 내년에는 마젤란 망원경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MMT라는 이름을 가진 구경 6.5미터 망원경 시간 4일을 천문연구원이 제공합니다. 지난 9월에는 2014년 관측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관측제안서 모집 공고가 났습니다.


당연히 지원할 수 있는 관측시간이었지만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국내의 다른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해외의 대형관측시설을 많이 사용해왔으니까, 이번 기회는 경험이 없는 다른 국내연구자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로 남겨주자는 배려였습니다. 관측제안서를 냈다면 경험을 토대로 경쟁력있는 제안서를 냈을 것이고 국내경쟁에서 유리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천문연이 거금을 들여 사온 관측시간은 국내연구자들에게 양보하는 대신, 경쟁력을 가진 우리팀은 해외 망원경 관측시간에 도전해야 한다라는 자부심 혹은 오기 같은 것도 있었겠고, 결국 국내연구자들의 대형망원경 관측 경험이 많아져야 한국의 천문학 연구 토대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공공성을 고려한 면도 있었죠. 물론 누가 이 글을 보면 잘난체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천문연구원의 프로그램 초기에는 관측제안서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막상 결심을 하고 났더니 불안함도 생겼습니다. 따기 쉬운 국내 관측 시간은 지원하지 않고 얻기 어려운 국제 관측시간을 도전했다가, 연구제안서가 다 떨어져서 내년에 관측 시간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그런 염려말입니다. 잘난 척 하다가 쪽박 차는, 그런 시나리오 말입니다.


이번 소식은 이런 염려를 말끔히 씻어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국내 연구자들에게 주어졌던 4일의 MMT 관측시간 만큼 우리는 4일의 Magellan 관측시간을 받았으니 상당히 흡족한 결과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군요. 이 정도 데이타면 세계 어디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학위논문을 써야 하겠죠? (물론 미래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


아쉬운 점은 여전히 국내 연구자들에게 확보된 관측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내년 한 해동안 천문연이 확보한 6.5미터 급 망원경의 시간은 4일인데 반해 저의 공동연구자가 속해있는 미시건 대학이 갖는 6.5미터 마젤란 망원경 시간은 10%입니다. 한달이 넘는 시간이죠. 미국의 한 대학이 가진 시간이 우리나라 천문학계 전체의 시간에 비교되는 겁니다. 미시간 대학 뿐만 아닙니다. 칼텍, 켈리포니아 대학, 하바드, MIT, 예일, 프린스턴, 아리조나, 등등 왠만한 대학들을 다 일정시간의 대형망원경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도 관측시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욕심일까요? 


그래도 우리는 국내시설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좋은 연구가 있다면 시설은 문제가 아니라는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은 다른 나라 관측시간에 도전해서 그동안 많은 연구를 해오긴 했습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큰 그런 과학연구를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경쟁이 심한 관측시간을 얻으려면 결국 확실한 연구주제가 있어야 합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도전적인 연구는 심사자들에게 총알맞고 그대로 전사하기 쉽습니다. 관측시간을 따기 어렵죠. 그래서 왠만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우리의 시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나저마 박사학위 논문 연구를 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 여러 번 사용했던 마젤란 망원경을 다시 쓸 생각을 하니 묘한 감정이 듭니다. 안데스 산맥도 그립고 라 세라나의 해변가도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