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212호 과학칼럼] 명품 논리, 경제 논리

별아저씨의집 2008. 6. 17. 02:54
[212호 과학칼럼] 명품 논리, 경제 논리


한국이 드디어 우주인을 배출해냈다는 소식이 포탈을 뒤덮었다. 우주시대의 개막, 우주정거장에서의 김치 파티, 우주식품 개발을 통한 국위선양 등등, 요란한 미디어의 얄팍함을 보는 일은 왠지 씁쓸했다. 우주선을 올리는 로켓에 태극 마크가 달린 것을 보고 저거 달기 위해 예산을 얼마나 썼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우주여행을 두고 여론이 갈렸다고 한다. 우주시대로 진입이라는 긍정적 의견과 260억 짜리 로또 우주여행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솔직히 개인적 의견으로 이번 이벤트는 쇼에 가까워 보였다. 구체적으로 얻은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우주기술 확보와 같은 아이디어에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우주기술은 간단히 말하자면 만들고 쏘고 쓰는 것이다. 우주선, 통신위성, 첩보위성에 부착하는 카메라, 우주공간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작동할 각종 장비들을 만드는 일은 최고의 기술에 속한다. 위성과 관련된 기술은 우리나라가 상당히 확보하고 있지만 유인우주선을 만드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둘째는 쏘아 올리는 기술이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무거운 탑제체 일수록 쏘아 올리기 어렵고 쏘아 올리는 로켓 기술은 대륙 간 핵미사일을 쏘는 기술과 같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하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인공위성 자세제어 같은 과목을 들을 때 만 해도 한미 군사협정 때문에 우리나라는 구경 5센티미터 이상 되는 액체연료 로켓은 손도 댈 수 없었다.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의 쏘아 올리는 기술은 미비하다. 쏘아 올리는 비용은 대략 만드는 비용만큼 비싸지만 우리나라의 위성들은 비싼 값을 치르면서 다른 나라의 로켓에 올려져 우주공간으로 나간다. 셋째는 쏘아올린 것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통신위성, 기상위성, 군사위성 등등 인공위성의 용도는 엄청나다. 무중력상태라는 우주 환경은 공학적으로 효용가치가 크다. 지구표면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다양한 파장의 빛을 이용해서 천문학과 같은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 가령, 지상에서는 확보할 수 없었던 뛰어난 이미지를 제공해서 천문학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허블 우주망원경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우주기술과 관련해서 이번 우주여행의 성과는 무엇일까? 글쎄다. 만드는 기술, 쏘아 올리는 기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그나마 우주공간의 실험이 주요한 성과가 될 수 있었겠다. 하지만 일회성 실험을 통해 얼마나 기술축적이 되었을까? 한국우주과학회 회장인 이화여대의 양종만 교수는 260억 원이 든 이 사업에서 우주실험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들어간 예산은 2 퍼센트 미만임을 지적했다. 우주실험이 사실상 별 볼일 없었음을 비판한 것이다. 대부분의 예산은 그러니까 이벤트를 여는 일에 사용되었다. 물론 첫 우주인을 배출하는 일은 첫 단계로서 필수적이고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어 체계적인 우주기술을 확보하는 단계로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현실적 관점도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었을까?

첫 우주인 배출, 소문난 잔치에 비용 너무 비싸…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가 우주인을 배출해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한국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우주기술을 개발해야한다는 경제논리도 있다. 미래의 군사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주기술을 지금부터 확보해가야 한다는 안보논리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소위 명품의 논리이다. 경제규모로 세계 10 위 권 안팎을 다투는 우리나라가 우주인을 배출하지 못한 나라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브랜드는 세계적 명품이 되어야 한다. 남들 다 들고 다니는 구찌 핸드백을 안 살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명품 논리이다. 첫 우주인 배출이라는 소문 자자한 잔치에 음식은 별로 없는데 비용은 너무 비쌌던 것은 바로 이런 빗나간 명품 논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명품 논리는 막강하다. 밥은 3천 원짜리를 먹어도 커피는 분위기 있게 5천 원짜리 스타벅스 라떼를 마셔야하고, 월세 집에 살아도 괜찮은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아야만 하며, 카드빚을 져도 명품으로 몸을 치장해야 하는, 그래야만 자신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게 만드는 명품 논리. 옷이 아무리 좋아도 옷걸이는 싸구려 일수 있고 포장지가 아무리 후져도 그 안에 값비싼 물건이 있을 수 있다는 기본적 진리가 철저히 망가지는 이 명품 논리가 우리를 철저히 세뇌하고 있다. 명품과 웰빙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남들에게 보일 이미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내면 성장보다는 외면 치장에 우리의 관심이 쏠린다. 물론 겉은 속을 대변한다. 이미지에 공을 들이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경향이 우리 삶을 휘어잡는데 있다.

종려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예수는 볼품없는 어린나귀를 탔다. 많은 환영 인파가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기세등등하고 잘 생긴 말을 타고 위엄 있게 입성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페르시아 산 명품에 해당되는 어느 백마쯤을 타야하지 않았을까?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민란을 대비하던 로마군의 장교들이 어린나귀를 타고 뒤뚱뒤뚱 입성하는 예수를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럼 예수는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한 분일까? 명품의 논리 앞에 많은 것이 희생된다. 예수를 따르른 제자의 삶에 명품 논리는 분명한 유혹의 목소리다.

과학자들은 국가정책이나 사업에 덜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우주망원경은 커녕 지상망원경을 보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일개 개인이 갖고 있는 정도의 작은 망원경 하나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과학이 발전하려면 우주개발이 중요하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한다. 낭비가 있더라도 우리 학문 분야에 예산이 들어오고 뭔가 시작돼야 나중에 내 연구비도 확보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천문학을 한다는 학자가 이런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망치는 일이라는 조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명품논리는 과학의 가치와 동기를 왜곡한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기술은 가져야 한다는 식의 명품 논리가 지배하는 한 과학발전은 그만큼 돌아가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현재 달에 다시 사람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제한된 나사의 연구비 중에서 달에 사람을 보내는 프로젝트가 하마처럼 예산을 먹어버리면 나사의 연구비에 의지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되거나 과학 대신 사업을 해야 한다. 천문학자들 중에서 달 프로젝트를 찬성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저 최고가 되겠다, 뭔가 위대한 정치적 유산을 남기겠다는 명품 논리는 과학의 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용하기 어려운 반대의 입장도 있다. 우주기술개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이 그렇다. 인간의 삶과 복지를 위해 예산을 쓸 곳은 넘쳐난다. 경제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우주 사업은 집어치워라. 물론 일리가 있긴 하지만 이런 경제논리에도 동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순수과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 블랙홀의 성질이 어떠한지 은하의 형성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오늘 우리의 경제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만두라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 현재 순수과학에 해당되는 내용이 미래에는 인류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공학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영국의 사회경제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뉴턴이 행성들의 운동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공위성 기술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우리가 탐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점이다. 자연세계와 우주를 연구하는 일은 창조주의 지혜와 신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어떻게 그분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운행하시는지를 배우는 일 자체가 바로 넓은 의미의 예배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영화들 중에 내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 영화들이 몇 편 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는 아프리카의 군벌들이 채취해서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다이아몬드를 소재로 다룬다. 다이아몬드는 무기구입을 비롯해서 내란을 악화시키는 든든한 돈줄이 된다. 그 자본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납치되어 소년병사로 로봇처럼 이용된다는 사실에 관객은 충격을 받는다. 영화는 다이아몬드를 밝히는 선진국 여성들의 사치 때문에 피 맺힌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진다. 명품에 대한 수요와 싼 가격에 공급되는 피맺힌 다이아몬드, 명품논리와 경제논리가 적절히 조화된 경우가 아닐까? 영화를 보고 결코 다이아몬드를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상당히 지키기 쉽다. 다이아몬드를 살 만한 여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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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의 영화, 아니 짧은 클립에 지나지 않는 애니메이션은 미트릭스(Meatrix)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직접 감상해 보시라) 영화 매트릭스 (Matrix)를 패러디하여 만든 이 애니메이션에는 평화로운 목장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돼지 네오가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가축들이 사실은 소위 가축공장이라는 험악한 처지에서 길러지고 있음을 깨닫고 거대기업들에 맞서 싸운다는 스토리를 갖는다. 이 애니메이션은 팩토리 팜(factory farm) 이라 불리는 거대기업이 운영하는 가축공장들의 실태를 고발하며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우리 집 식단이 바뀌어 버렸다. 별로 관심 없던 식생활, 특히 고기섭취에 대해 다양한 글들도 찾아보고 식생활 패턴을 점검해 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가족 중심으로 경영되는 소규모 농장을 돕고 거대자본의 폐해를 줄이는 작은 노력으로 동네 근처의 가족농장 (family farm)에서 나온 고기만을 소비하기로 했다. 물론 가족농장에서 풀을 먹여 기른 가축의 고기는 서너 배가 더 비싸다. 그만큼 우리 집 식단에서 고기 량이 줄었다.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미국인들의 고기소비는 90년대 초부터 많이 줄기 시작했다는 통계들이 있다.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찾고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은 고기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엄청난 정치력을 갖고 있는 미국 축산협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가축공장의 비밀이 세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미트릭스의 용어를 따르자면 말이다.

한미 간 협상을 통한 쇠고기 수입이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그 이슈에는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중심을 차지하는 듯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에는 과장된 면도 있고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얘기도 있다. 물론 살코기라든가 20개월 미만의 쇠고기의 경우, 광우병 위험이 있음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논리도 가능하고 반대로 광우병 위험이 없음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과학 논리를 양보하더라도 국민건강이란 측면에서 검증되지 않은 위험까지 막아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랄 수 있겠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대폭 쇠고기 수입이 개방되는 것은 한미 간의 FTA 타결이라는 경제논리가 우선되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있다. 그리고 그 경제논리에 얻어맞은 찹찹함이 있다. 하지만 쇠고기 문제는 단지 광우병뿐만이 아니다. 미국 축산업의 중심을 차지하는 가축공장에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문제들이 숨어있다. 미트릭스가 꼬집어내는 그 문제점들을 간단히 들여다보자.

창조세계 위협하는 경제 논리

집안 식구들이 함께 일하는 가족목장은 거대자본으로 운영되는 가축공장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미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축을 기르던 가족목장은 백만 개 이상이 문을 닫았고 싼 가격에 고기를 생산해 내는 거대기업들은 시장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소규모의 가족농장들이 망한다는 사실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자본의 논리일지도 모른다. 싼 가격에 고기를 공급한다는 경제논리를 누가 대항하랴. 문제는 경제논리 앞에 희생되는 어쩌면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거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가축공장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가축들이 활동할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매우 좁은 공간에서 사육한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부작용들은 상상에 맡기자. 둘째는 엄청난 양의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의 사용이다. 열악한 공간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그만큼 저항력이 떨어지고 병에 취약하다. 항생제 투여는 싼 비용의 해결책이다. 통계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미국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약 40-50퍼센트가 가축에 투여된다. 항생제 과다 사용의 부작용은 미래에 엄청난 재앙으로 인류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소비자들이 제기한다. 성장호르몬의 안정성 여부도 불투명하다. 셋째는 동물성 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는 바로 교차 감염의 우려인데 고기로 생산하고 남은 소의 여타 부위를 다른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그 다른 가축들을 소의 사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광우병의 인간전염 경로에 대해 무척이나 말들이 많긴 하다. 하지만 어쩌면 광우병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한 가지 단면일 뿐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길러지는 가축들에 대해서도 안전성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부족한 사육공간이나 항생제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가축도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미국 가축공장의 심각한 문제는 경제논리가 최고 일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의 피를 먹고 자란 송아지가 안전하다는 과학논리, 그렇게 만든 소고기가 싸다는 경제논리는 그저 끔찍할 뿐이다. 경제논리만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를 지켜낼 수는 없다. 경제논리는 우리 삶 전반에 깊숙이 침입해 있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경제논리를 따른다. 물론 현대사회에 살면서 경제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논리를 항상 최우선으로 삼는 것은 분명 성경적일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논리를 제대로 비판할 기독교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교회는 이런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종학 (천문학 박사,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