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신임교수 정착연구비, 그림의 떡인가

별아저씨의집 2009. 10. 13. 15:21
연구비는 연구활동에 중요한 밑천 중의 하나이다. 연구원이나 학생을 고용하거나 연구용 기기를 사거나 학술회의에 가거나 관측을 가는데 다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왠만한 학교에 신임교수로 가게될 때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정착연구비 금액이다. 보통 오퍼를 받은 교수와 학교간의 협상이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수만불에서 괜찮은 신임교수들의 경우에 몇십만불 정도의 연구비를 학교에서 지원받는다. 정착연구비가 중요한 것은 신임교수로 부임하자 마자 막상 연구비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포잘을 내고 연구비를 새로 따오는데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비를 따올 신임교수를 위해 그 정도 투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에서 오퍼를 받고 정착연구비에 대해 물어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이어서 놀랐다. 물론 미국학교들의 정착 연구비에 비하면 게임이 안되지만 이 정도면 한국에서 연구비가 마련될때까지 충분히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막상 9월에 학교에 와보니 정착 연구비는 원래 예상보다 반으로 깎였다. 그건 뭐 그렇다 치자. 문제는 정착연구비를 기자재 비용으로만 사용하라고 제한해 놓은 것이다. 기자재는 실험실 도구, 기기 같은 것들을 말한다. 깝깝하다.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일률적 조치라고 말할 밖에.  

관측 천문학 분야는 교수 개개인이 실험실을 갖는 것이 아니라 망원경을 서로 공유한다. 비용을 따지자면 하룻밤에 몇만불씩 하는 망원경을 공동연구자들과의 인맥을 통해 사용한다. 그렇게 공짜로 귀중한 망원경 시간을 얻었는데 그 관측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여비로도 쓰지 말라는 얘기는 뭘까. 학회도 마찬가지다. 학회에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하는 과학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관심을 끌어내고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렇게해서 망원경 시간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신임교수의 정착연구비는 가장 편하게 쓸수 있는 연구비다. 나사나 과학재단에서 받는 연구비들은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기 때문에 꼭 써야하는 중요한 항목이 있을때 그러나 다른 연구비를 사용할 수 없을때 정착연구비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주는 정착연구비는 전혀 그런 융통성을 갖지 못한다.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할때도 관측이나 국제학술회의 참가하는 경비는 걱정하지 않고 다녔다. 그런데 이거참 갑갑하다. 공무원 사회에서 교직원들이 그런 융통성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아님, 학장으로부터 연구관련 실무자들이 재정을 아끼려고만 하는 것인가? 연구비없어 연구 못하던 십년전의 실정도 아니고 내가 받은 정착 연구비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연구비 때문에 신경쓰고 이것 저것 알아보느라 시간낭비하고.. 연구 의욕 팍팍 꺾인다. 한국의 연구환경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찹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