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연구하는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별아저씨의집 2009. 8. 19. 22:39
귀국 준비를 하면서 여러가지 연구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앞으로 할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몇주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제는 UC Irvine에서 한 교수가 UCLA로 방문해 주어서 내 오피스에서 하루종일 같이 일을 했고 바로 전에는 산타바바라에서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전에는 리오에서 학회에 참여하면서 여러사람들을 만났고 그리고 동경에서 일본국립천문대를 며칠 방문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하고 현재 진행중인 관측을 점검하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파사디나의 카네기 연구소에 가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방문중인 연구자와 카네기 사람들과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오후에는 칼텍에 들러 공동 연구자들과 담소를 나눌까한다. 오늘은 귀국하기 전 마지막 하루가 될 것같다. 물론 9월에 다시 UCLA에 다니러와야 하기 하지만 말이다. 

젊은 교수들,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무척 재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그들과 새로 발표된 결과들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흥미롭고 함께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연구계획을 세우고 망원경 시간을 얻기 위해 프로포잘을 내고 관측계획을 세우고 데이타 분석을 나누어서 하고 결과들을 갖고 토론하고 함께 논문을 쓰는 일들은 정말 연구의 진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이들과 밥 한끼를 먹거나 담소를 나누면 금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프로젝트 가능해진다. 물론 그런 아이디어들을 모두 추구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 후에 둘 중 한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정말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하나 만들어진다. 좋은 연구자들을 만나 함께 일할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또한 이런 공동연구가 가능하게 여행할수 있는 연구비가 충분히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한국에 가게 되면 학기중에는 여행이 많이 제한된다. 서울대의 경우, 학기중에는 7일 밖에 해외에 나갈수 없다고 한다. 해외에서 주로 관측을 하고 학회를 다녀야 하고 공동연구를 위해 미팅을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찌보면 갑갑한 현실이다. 나의 경우도 다음학기, 그러니까 8월에서 1월까지 여러 망원경 시간을 받은 것을 합하면 13일이 되는데 그 중 반 가량은 학기중 날짜로 스케쥴이 잡혔다.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측을 통해 데이타를 얻는 것인데 관측도 할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해외에서 그렇게 관측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아직도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이 공동연구자들에게 부탁할 수 밖에. 그래도 12월과 1월 관측은 전부 커버할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규정에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가령 수업을 많이 빠지지 않게 한다거나 등등) 정말 연구중심의 대학, 세계에서 상위권의 대학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규정이 연구를 방해한다는 것은 분명 지적되어야 한다. 

몸이 정신을 못차려 계속 새벽에 깨고 있다. 이삿짐을 한국에 보낸 뒤로는 말그대로 장기여행중이다. 며칠간 호스트를 해주고 있는 파사디나댁과 그의 남편(^^)이 고맙다. 좋은 연구결과들의 밑바탕에는 주변사람들의 도움과 지원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직접 좋은 과학이 나올것을 기대하며 나를 도와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브라질에서 마이애미 공항으로 들어오면서 입국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신참같아 보이는 직원이 직업이 과학자라는 말에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어본다. 블랙홀 무게를 잰다고 말해주었더니 무척 존경해하는 눈치다. 서류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수퍼바이저에게 가서 이것저것 묻더니 함께 온다. 수퍼바이저가 블랙홀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몇가지 얘기를 나누나 내가 받는 NASA의 연구비도 다 당신들의 세금에서 나오는 거다. 고마와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네도 이런 사이언스를 써포트하는 것이 영광이란다. 그 신참내기 직원은 싸인까지 해달라고 한다. 돈이 되지 않지만 순수과학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대중의 수준을 나는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그것이 먹고사는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 질문을 잘못되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현저한 수준차이를 분명 볼수 있다. 

연구하는 면만을 본다면 미국을 떠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듯 하다. 마지막 하루, 열심히 그러나 여유있게 보낼거 같다. 긴여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