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비평]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 - 두번째: 자연주의자의 의자에서 일어서라고? 어떻게?

별아저씨의집 2009. 6. 11. 16:13
6장 상식에 기초한 과학

5장에서 진화를 일으킬 메카니즘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무모한 공격을 펼친 낸시 피어시는 6장에서 본격적으로 지적설계론을 도입한다. 

마이클 베히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윌리암 뎀스키의 특정한 복잡성 (책에서는 지정된 복잡성으로 번역되어 있다)을 설명하며 설계의 흔적은 기존의 과학적 설명, 그러니까 법칙과 우연으로는 설명할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뎀스키의 설명여과기를 따라 법칙과 우연에 의해서 설명될수 없는 현상은 설계자의 설계임이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설명여과기와 뎀스키의 설계논증에 대해서는 예전에 복음과 상황에 쓴 글, '너무나 인간적인 지적 설계'라는 글을 참조하라. 

설명여과기에 대한 비판은 전에도 했으니까, 설계의 개념에 대해 하나만 언급하고 넘어가보자. 신의 설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지적설계론자들은 범죄학이나 외계생명체 연구와 같은 예를 들어 반박한다. 어떤 사건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는지 누군가 고의로 일으켰는지 알 수 있듯이, 또한 외계에서 오는 신호가 자연적 과정에 의한 신호인지 어떤 지적 존재들이 보내는 신호를 구분할 수 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에도 신의 설계임을 밝힐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외계생명체나 살인사건의 예와 비교하면 그럴듯한 논리이다. 그러나 외계생명체가 보낼만한 수학적 패턴이나 혹은 범죄현장에 남아있을 만한 살인자의 지문이나 발자국 혹은 어떤 흔적들은 우리가 명백하게 잘 아는 패턴들이다. 그러나 자연계에 남아있을 창조자의 설계흔적이 그와 마찬가지로 명백할까?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유는 그럴듯 하지만 실제로 자연계의 어떤 현상이 창조주의 설계임을 입증해 줄 과학적 기준은 없다. 가령, 마이클 베히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띈다고 주장하는 예들도 다른 과학자들은 자연적 과정으로 만들어질수 있다고 주장한다. 설계논증은 형이상학으로는 분명 가치있는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설계를 입증할 과학적 기준은 없다. 

설계론을 주욱 풀어낸 낸시 피어시는 '자연주의자의 의자에서 일어서라'라는 소단원으로 6장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그녀는 드디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을 비판한다. 한마디로 하자면 왜 무신론자들이 정한 과학의 범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냐고? 왜 하나님을 배제하고 과학을 하겠다는 그 규칙을 받아들이냐고. 지적설계론자들의 이런 주장의 바탕에는 소위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따르는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사실 무신론을 따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평가가 깔려 있다. 낸시 피어시의 글에도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가정이다.  

자연주의자의 의자에서 일어서라고?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나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지적설계론자들의 비판은 사실 근거가 빈약하며 오히려 잘못된 과학 (wrong science), 나쁜 신학 (bad theology)를 낳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몇가지 따져보자. 

1.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신을 배제하고 과학을 하는 것인가?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자연현상에 신이 간섭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근대과학이 성립하기 전에는 자연현상을 직접 신이 일으키거나 천사를 시켜 만들어낸다는 개념이 강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화난 신이 손가락에서 번개를 쏘아내고 갑자기 비구름을 몰고 오기도 하며 바위들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과학이 성립하면서 자연현상의 탈신화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변덕스런 신들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란 바로 신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적인 방식으로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통해서 근대과학은 발전해왔고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과학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다.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지적설계론자들의 비판은 신을 배제하고 과학을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물론 무신론자들은 그렇게 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들은 자연현상에서 신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인과관계만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크리스천과학자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신을 자연현상에서 배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주가 자연현상에 법칙과 질서를 부여해서 자연적인 인과관계를 갖도록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이 신들처럼 변덕스럽게 자연현상에 마구 간섭하는 신이 아니라 질서와 법칙을 부여해서 자연계가 움직이도록 창조한 신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가능한 것은 신을 배제해서가 아니라 신이 창조계를 그렇게 질서있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2.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무신론자들이 정한 것인가?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그 이름때문에 마치 무슨 무신론 같다. 자연주의라는 말도 사실 무신론과 같은 개념의 뜻으로 쓰일때가 많다. 가령 모든 현상이 자연적 인과관계를 갖는다와 같은 주장이 그렇다. 그렇다보니 지적설계론자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도 무신론처럼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낸시 피어시는 6장에서 마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무신론자들이 정한 것이라며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과학을 한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본문에서 인용해 보자.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자연을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보는 무신론자들(형이상학적 자연주의)과는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과학이 자연적 원인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방법론적 자연주의)에는 동의한다. 풀러신학교의 철학자 낸시 머피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과 무신론자들은 다같이 창조주를 들먹이지 않고 우리시대에 과학적 의문을 탐구해야 한다." 왜 그런가? 글쎄, 무신론자들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방법론적 무신론에 입각한 과학관을 물려받았다"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

나는 이 문단에서 낸시 피어시의 잘못된 과학관과 나쁜 신학관을 동시에 본다. 피어시는 지적설계론의 리더인 필립 존슨의 책, '심판대 위의 다윈'을 제대로 비판한 플러신학교의 낸시 머피의 글을 인용하며 유신진화론을 비판한다. 인용문에서 내가 강조한 부분, '왜 그런가? 글쎄, 무신론자들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를 보면 마치 낸시 머피가 그저 무신론자들이 정한 과학의 규칙에 따라가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과학을 자연적 원인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무신론자들이 정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낸시 머피의 글을 보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방법론적 무신론에 입각한 과학관을 물려받았다"는 문장 바로 전에 이런 문단이 나온다. 


요약해 보면 필립 존슨은 과학을 자연적 원인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지만 사실 그것이 과학이 성립된 역사이다. 더군다나, 과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켜 근대과학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뉴턴과 보일을 예로 들면서 낸시 머피는 자연현상에 마구간섭하지 않는 신을 가정하는 것이 그래서 과학을 자연적 원인에 제한하도록 한 이유는 바로 신학적 이유때문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사실, 많은 역사가들은 기독교 때문에 근대과학이 성립했다고 까지는 보지 않더라도 근대과학의 성립에 기독교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질서와 법칙의 이성적 신의 개념을 기독교가 제공했기 때문에 자연세계가 규칙적으로 자연적 원인에 의해 인과관계를 이룬다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래서 근대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 생각해 보자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무신론자들이 만들었는가? 그렇지않다. 근대과학을 성립시킨 수많은 과학자들이 크리스천이었고 그들은 바로 그들이 믿는 창조주가 창조계를 질서있게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형성된것이다. 

낸시 피어시가 낸시 머피의 글을 인용하면서 "글쎄, 무신론자들이 정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머피가 바로 전 문단에서 대표적인 크리스천 과학자 둘의 예를 들면서 근대과학이 이루어진 배경을 언급하고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 신학적인 이유때문이었다고 언급했는데도 그 부분은 잘라먹고 "좋든 나쁘든, 우리는 방법론적 무신론에 입각한 과학관을 물려받았다" 라는 문장만 인용한다. 그래서 마치 과학을 자연적 원인에 제한하라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머피가 따르는 것처럼 오도한 것은 지적으로 불성실한 일면이다. 물론 창조과학자들이나 지적설계론자들의 고의적 혹은 비고의적 오독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듯 하다. 


3.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넘어서는 과학이 가능한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무신론자들의 세계관에 동의해서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현상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과학의 범주를 정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고작해야 경험적 데이타를 얻을수 있는 내용을 다룰수 있을 뿐이다. 창조주가 자연계에 개입해서 뭔가 작용을 했다면 그것을 어떻게 과학으로 다룰수 있을까? 지적설계론자들은 기원의 문제에 관해서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주제들은 성령의 임재를 과학적으로 밝혀낸다거나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연구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경험적 방법론에 의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질수 없는 주제들이 아닌가? 하나님의 창조를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신학도 해야하고 형이상학적 변증도 해야한다. 다만 그런 내용들도 과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주장하다 보니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입각한 과학조차도 악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다. 자연현상의 인과관계에 자연적인 원인이 아니 신의 어떤 개입을 인정하고 그것을 과학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과학 자체가 문제를 떠안게 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넘어선 과학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과학을 만들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결국, 다른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낸시 피어시의 주장은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신학자들에게 한마디로, wrong science, bad theology라는 비판을 받을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