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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 - 첫번째: 5장 다원과 베렌스타인 곰의 만남

별아저씨의집 2009. 6. 6. 16:34
방명록에 오신 어느 손님이 질문을 남기시는 바람에 낸시 피어시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2년 전인가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은 이유는 과학, 특히 진화론과 관련된 그녀의 입장과 그리고 지적설계론에 대한 주장을 좀더 살펴보기 위함이다.

나는 피어시가 '완전한 진리'에서 담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수 있는 '세속적 세계관에 갇혀 있는 기독교를 탈출시켜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녀가 제시하는 구체적 분석과 대안에는 동의가 잘 안되는데 특히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이 그렇다. 도대체 세속적 세계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책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과학을 다루면서 그녀는 자연주의를 세속적 세계관의 하나로 꼽는다. 그리고 자연주의와 자연주의적 방법론에서 과학을 해방시키는 일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은 바로 지적설계론이다. 

생각을 정리할 겸 몇번에 걸쳐 노트를 하기로 한다. 오늘은 5장을 살펴보자. 

'다윈과 베렌스타인 곰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5장은 진화론의 허구성을 다루는 것이 주 내용이다. 동의할만한 내용, 옳은 내용 물론 많다. 심지어 어린이 동화책에도 무신론적 철학이 담겨있다며 그녀는 혀를 내두른다. 동의한다. 무신론자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무신론자인 데닛은 진화를 다루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윈의 위대한 업적은 우주의 설계를 목적없고 무의미하게 운동하는 물질의 산물로 환원시킨 것이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했다는 예도 나온다. 물론 데닛의 주장은 진화이론의 내용과 상관없는 철학적 해석이고 생물학자들이 그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런 무신론적 세계관을 과학의 힘을 빌어 전도하는 장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녀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녀의 핵심 주장은 진화이론이 과학적 증거보다는 무신론적 철학의 가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녀는 진화의 증거로 사용된 예들이 조작되었던 사례를 제시한다. 가령, 흰나방과 검은 나방의 사진이 연출된 것이라든가 인간이나 동물이나 비슷한 배아단계를 거친다는 증거로 제시한 헤켈의 그림이 과장되었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런 예이다. 그녀는 이런 예가 조작/과장 되었음이 드러났는데도 아직도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무신론적 철학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래 조작/과장 분명히 있었다. 리 스트로벨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창조설계의 비밀'이라는 책에도 그런 예들을 제시하며 진화의 주요한 증거들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양승훈 교수의 '창조와 격변'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사례들을 처음보면 우와 속았다하는 느낌이 들것이다. 쇼킹하다. 교과서에도 본 그림인데... 그렇다고해서 낸시 피어시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까?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과학계에는 조작/과장의 경우가 꽤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예가 있다고 해서 모든 혹은 대부분의 증거를 조작/과장으로 볼 수는 없다. 과학의 맛은 그런 조작과 과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혀지고 제거되면서 합의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 사례가 연출된 것이라고 해서 진화론을 허구라고 볼수는 없다는 말이다. 조작되지 않은 다른 증거들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증거 혹은 대부분의 증거나 조작되었다는 결론은 오버다. 더군다나 피어시가 제시한 사례들은 별로 그렇게 진화론에 상처를 주는 것도 아니다. 흰나방과 검은나방을 나무에 붙여놓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흰나방에서 검은나방으로 변이가 이루어진 것을 부정할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녀는 소위 소진화가 일어나는 사례들을 주로 부정하고 있는데 소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심지어 많은 창조론자들도 인정한다. 

5장을 읽어보면 진화론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죄다 무신론 과학자다. 왜 창조주가 진화를 통해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 생물학자들의 의견은 전혀없을까? 그녀는 무신론 철학에 기초해 과학적 증거도 없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무신론 과학자들을 한편에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무신론 철학을 깨뜨려야할 숙제를 크리스쳔들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왜 다수의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전혀 제시하지 않는가? 그녀의 주장대로 진화론이 과학적 증거도 없이 무신론 철학에 기초한다면 도대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 생물학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도 무신론 철학에 기초해서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교회서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연구실에서는 무신론자로 살고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많은 크리스천 생물학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진화론이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낸시 피어시가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무신론 철학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피어시가 진화론은 무신론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전제에서 출발하면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무신론 철학에 의존하는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들을 색안경을 끼고 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런 전제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낸시 피어시는 오랫동안 지구의 나이를 6천년으로 보는 젊은지구론자였다. 젊은지구론의 주장을 담은 성경-과학 뉴스레터를 십여년 동안 편집했다. 반진화운동을 해오던 그녀는 현재 지적설계운동의 심장인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지구 나이를 만년 이하로 보며 대부분의 과학을 부정하는 젊은지구론에 서있던 그녀의 배경을 알면 그녀가 과학을 보는 시각이 왜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져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케케묵은 80년대에 시카고에서 있던 진화 학회 얘기와 굴드의 단속평형론 얘기도 등장한다. 주론 반진화를 주장하는 창조과학계의 시각이다.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들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크리스천 생물학자들의 의견을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과학이 자연주의와 무신론에 속박되어 있다고 진단하는 것, 특히 진화론을 가지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전혀 공평하지도 않고 동의하기도 어렵다.